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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시크릿

정몽필 정주영회장이 교통사고로 잃은 장남, 정몽구 형의 이야기

by 별빛아침 2024.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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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가 장남은 현대그룹을 물려받은 정몽구 명예회장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정주영 회장에게는 먼저 떠나보낸 비운의 큰아들 정몽필이 있었습니다. 한때는 아버지의 신임을 잃고 무일푼 생활을 하며 장남의 무게를 견뎌야 했던 정몽필과 그의 아내 이양자의 모든 것을 알아봅니다.

[목차]

아버지를 ‘형님’이라고 불렀던 이유

정주영은 17세에 첫 결혼을 하고 아들 몽필을 낳았지만 아내와의 불화가 심했습니다. 결국 아내가 집을 나가버리고 이후 변중석과 재혼했습니다. 

정주영 변중석 젊은 시절

변중석은 많은 시동생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제일 어린 여섯째 시동생(정상영)이 세 살이었고, 몽필이 다섯 살이었는데, 몽필 역시 정주영을 ‘형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날 몽필에게 할머니는 변중석을 가리키며 ‘엄마’라고 부르도록 했습니다.

정몽필은 정주영의 첫 번째 부인 소생의 아들이자, 정주영과 변중석이 기른 8남 1녀 중 장남입니다. 

정주영 일가 가족사진, 맨 뒷줄 제일 오른쪽 정몽필

‘상종도 하기 싫다’며 내쳐진 장남

정주영을 닮아 소탈한 성격에 축구, 스키, 골프 등 운동도 잘해 대인관계도 좋았던 정몽필이 유일하게 두려워했던 사람은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를 여러 면으로 존경했지만, 장남으로서 형제들보다 더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버지를 두려워만 했습니다.

정몽필은 1976년 <동서산업>을 창립하며 경영 일선에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말단사원 애경사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심지 깊은 사장’이라 불릴 정도로 애정이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동서산업>이 부도 나면서 아버지로부터 “상종도 하기 싫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렇게 아버지 눈 밖에 나면서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배제당했습니다.

정주영회장의 장남 정몽필

현대가 운명을 바꾼 비운의 사고

아버지를 피해 영국으로 도피한 정몽필은 떠돌이 무일푼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보다 못한 삼촌들이 나서서 “현대의 장자가 런던 뒷골목에서 끼니 걱정하고 있다니 말이 됩니까?” 라며 설득한 끝에 정주영은 인천제철 사장으로 불러들이며 기회를 주었습니다.

아버지 정주영회장

다시 온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정몽필은 동분서주했고, 마침내 아버지의 신임을 얻어 현대전자 사장 자리를 받았습니다. 당시 현대전자를 맡긴다는 것은 곧, 후계자 승계를 앞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1982년, 현대전자 사장 임명을 코앞에 둔 정몽필은 울산에서 현장 업무를 마치고 새벽 5시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인천으로 오던 고속도로에서 대형 교통사고를 당해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향년 47세로 안타까운 죽음이었습니다.

당시 정주영회장은 조지워싱턴대 박사학위 수여식을 앞두고 미국에 방문 중이었습니다. 수여식 축하를 위해 가족대표로 정몽필이 오기로 한 날을 기다리고 있던 중에 사고 소식을 듣게 된 정주영은 “하늘이 나를 버렸다” 며 크게 통곡했습니다.

아나운서 출신의 미녀 아내 이양자

정몽필에게는 아내 이양자와 두 딸이 남겨져 있었습니다. 아내 이양자는 KBS 아나운서 출신으로 KBS TV 개국 첫 멘트를 한 역사적 인물입니다. TV에서 본 이양자에게 반한 정몽필은 아버지에게 마음을 털어놓았고 정식 맞선 자리가 성사되었습니다.

맞선 자리에 동반한 정주영 회장은 상당한 미인에 얌전하고 풍성이 착한 며느리를 알아보고 그 자리에서 사돈인 이현구(농협은행 대전지사 전무)에게 혼사를 제의했습니다.

그렇게 현대가 맏며느리가 된 이양자는 사표를 제출했고, 남편을 따라 미국 유학길에 동반했습니다. 이후 남편의 사업 실패를 함께 가슴 아파했던 이양자는 정몽필의 떠돌이 시절 유방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정몽필 아내 이양자

며느리 병을 고치기 위해 정주영이 한 일

결혼 이후 정주영은 ‘우리 집안의 모범 며느리’ 라며 이양자를 자랑했습니다. 집안 행사나 대회 행사 때 늘 이양자를 곁에 두고 수행을 맡길 정도로 맏며느리에게 각별했습니다.

장남 정몽필의 사망 후, 정주영은 장남에게 못다 한 사랑까지 모두 이양자에게 쏟고 싶어 했습니다. 시댁 청운동으로 불러들여 옆에 두고, 이양자의 동생 이영복을 ‘동서산업’ 사장으로 파격 승진시켰습니다.

그러나 이양자의 암이 급격히 나빠지고 뒤늦게 투병 사실을 안 정주영은 미국으로 보내 치료를 받도록 했습니다. 미국행 치료를 앞둔 이양자에게 정주영은 ‘너 하고 싶은 게 뭐냐’면서 뭐든지 해주고 싶어 했습니다. 이때 속 깊은 이양자는 ‘이젠 몸도 가볍고, 아무 걱정 없습니다 ‘라며 오히려 시아버지를 안심시켰습니다.

이후에도 정주영은 며느리 병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1990년 결국 며느리마저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정몽필 이양자의 두 딸 근황

첫째 정은희(1971년생)는 이화여대 재학 중 연애한 남편, 주현과 결혼했습니다. 주현은 현대 아이에이치엘(IHL) 대표를 역임했으며 2018년 퇴사했습니다. 정몽필의 차녀 정유희(1973년생)는 초등학교 동창인 김지용과 1999년 결혼했으나 이혼했습니다.

김지용은 쌍용그룹 김석원의 장남으로 용평리조트 상무를 거쳐 현재는 고속도로 휴게소 3곳을 운영 중인 태아산업의 최대주주로 부사장이며, 최근 아나운서 김성경과 재혼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형님의 빈자리를 채운 정몽구 

자식들에게 엄격했던 정주영은 장남을 먼저 떠나보낸 후에야 비로소 자식들 사랑에 눈을 떴다고 전해집니다. 이때부터 아들들을 대거 경영에 참여시켰고, 후계자 경쟁 끝에 차남 정몽구에게 현대그룹을 물려주었습니다.

정몽구는 형 대신 장남 역할을 충실히 했을 뿐 아니라, 조카들을 자식처럼 아꼈으며 정은희, 정유희가 결혼할 때 부모 역할을 대신하며 빈자리를 채워주었습니다.

정몽필의 동생들 - 왼쪽부터 몽구, 몽근, 몽헌, 몽준, 몽일 (2001년 정주영 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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